입력 2020.08.11 01:00
지난 4일 경기도 이천시 율면 산양저수지 일대 마을에서 주민들이 토사가 덮친 수해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뉴스1
48일째 지속된 역대급 장마의 직격탄을 이주노동자들도 피하지 못했다. 특히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등 '집'이라 부르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서 버티던 이주노동자들이 집중 피해를 입고 있다는 지적이다.
10일 이천시에 따르면 지난 2일 집중호우로 발생한 율면 산양저수지 붕괴 사고로 인근 율면실내체육관과 율면고등학교에 대피한 173명 중 118명(68%)이 외국인이다. 이천시 관계자는 “외국인 중 이주노동자가 몇 명인지 정확히 파악은 안되지만 지역 특성상 대부분이 해당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양저수지는 1만1,490㎡로 축구장 2배 크기에 달하는 면적이었으나, 기록적 폭우로 둑이 무너지면서 인근 가구와 임시 건물들을 흔적도 없이 삼켰다.
이천은 인근 양평, 여주와 함께 농업분야 이주노동자가 많은 지역이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조 위원장은 “이천 외에 추가로 파악된 피해는 없다”면서도 "이번 일로 이주노동자가 아예 주거지를 잃거나, 수해기간동안의 급여를 받지 못하고 해고될까 걱정"이라고 한 숨을 쉬었다.
비닐하우스 ' 하나만 규제... 하우스 속 컨테이너, 가건물 못 막았다
노동ㆍ인권단체들은 농업분야 이주노동자의 숙소가 대부분 논밭에 있는 ‘비닐하우스’였기 때문에 이번 사고의 직격탄을 맞았다고 말한다. 사업주가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을 고용하려면 숙소를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농장 한 켠의 비닐하우스를 ‘기숙사’라고 제공하는 경우가 대다수라 폭우로 논밭에 물이 차 수해를 피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이주와인권연구소가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조사한 바에 따르면 농축산어업 분야 이주노동자의 58.1%가 임시가건물 혹은 작업장 부속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지난 2017년 말부터 ‘농업분야 외국인 근로자 근로환경 개선 방안’을 통해 농업분야 외국인 근로자의 비닐하우스 거주를 제한하고 있는 데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시 정부는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사용하는 사업장은 신규외국인력 배정을 중단하고, 이러한 환경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도 사업주 동의와 상관없이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노동자를 열악한 환경에 방치하고도 ‘월세’ 명목으로 임금을 차감하거나 무급 노동을 시키는 실태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노동계는 그러나 이 대책을 두고 ‘딱 비닐하우스만 막았다’고 꼬집는다. 비닐하우스 안컨테이너나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가건물을 세워 숙소를 제공하는 ‘편법’은 규제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애초 고용허가제에 기타주거시설을 허용한 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주노동자 쉼터 ‘지구인의 정류장’을 운영하는 김이찬 대표는 “사업주가 제출하는 ‘외국인기숙사 시설표’는 허위사실도 많지만 고용노동부는 현장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다”며 “사람답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숙소를 제공하는 게 당연한데도 법에 탈출구를 만들어 인권침해를 용인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출처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81009300005915?did=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