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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위디컬럼

생명공학과 부활

by 위디국제선교회 2009. 4. 14.
2006-05-14 15:25:32

 

이철민 선교회장

이번 성지순례동안에 함께 동행한 초신자에게 그 부인의 부탁으로 기독교의 기본을 얘기하면서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부활 사상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종교적인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윤리적인 삶, 사회개혁, 심리적 위로 같은 요소들은 굳이 기독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얼마든지 보게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적 특징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물론 각 종교에서 숭배하는 교주중에 사람들의 죄를 위해 죽었다는 사람이 없는데 반해 기독교의 예수님만 사람의 죄를 위해 죽었다는것도 독특하지만 그러나 부활은 더욱 독특하다.

 역사적 실존 인물인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 자신들의 운명을 온전히 담보시킨 종교는 기독교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부활신앙은 기독교에서 결정적인 요소일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그런 정도의 위험을 수반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예수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 신앙의 모든 근본이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일부 목사님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신앙의 중요성을 별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만약 그분들이 부활신앙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에 관해서 끊임없이 강조하고 생활속에서 부활의 의미를 찾으려하고 적용하여야 할텐데 부활절 때만 “부활을 믿습니다.” 하는것 같다고 느끼는 것은 본인의 편협함때문만은 아닌것 같다.


 어제 황우석박사의 판결뉴스를 보았다.

그 사건자체는 사기로 결론이 났지만 기왕에 인정된 돌리나 스누피의 복제를 보면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21세기의 실증적 과학주의인 생명공학앞에서 당혹스러워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미 19세기 중반에 진화론 논쟁으로 인해서 기독교 신앙의 위기를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에 게놈지도, 배아줄기세포, 동물복제 등등의 용어로 상징되는 21세기의 생명공학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이러다가 정말로 생명의 근원이 우리가 믿고있는 하나님외에 인간들도 창조할수 있는게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사태 앞에서 변칙을 쓸 생각을 하지 말고 정곡을 치고 나가야 한다. 우선 유전공학 프로그램이 생명의 실체를 완전하게 노출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다각도로 해명하는 데 모든 것을 걸어야 하겠지만 만약 거꾸로 유전공학이 생명 현상을 완전하게 해명하게 된다면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럴때 기독교의 본질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 우리는 이 시대가 기독교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일희일비 할 필요 없이 기독교의 근본을 해명하는 일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 길밖에 다른 대안은 없다. 그 결과에 대해서 하나님께 맡겨두고서 말이다. 오늘의 기계론적 생명관을 극복하기 위해서 생명의 심층과 역동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부활 신앙이 단지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만 통하는 은어가 아니라 실제로 삶의 실질로 해명되고 변증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전도와 선교적인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를 위해서 교회 지도자들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예수의 부활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는지에 대해서 충분하게 이해하여서 성도들이 어떤 태도로 이 부활신앙을 오늘의 삶에 실제로 담아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 적용하며 살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