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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선교정보/이주자 관련 언론 보도

입양으로 생이별 자매 선교사돼 다시 만난다

by 위디국제선교회 2010. 5. 26.
[국민일보, 2010.05.20, 지호일기자]
어느 날 어린 여동생은 낯선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외국으로 떠났다. 언니와 동생은 따로 떨어져, 다른 언어를 쓰며 자랐다. 그렇게 36년이 지났고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선교사가 됐다. 자매는 상처 속에 성장했지만 하나님은 이들의 영혼을 놓지 않으시고 기어이 은혜의 길을 함께 가도록 하셨다. 언니는 지금 동생과 12년 만의 재회를 기다리며 설레고 있다.

20일 카자흐스탄에서 사역하는 이성현(45) 선교사를 만나 그와 네 살 터울인 여동생이 지내온 사연을 들었다. 이 선교사는 현지 알마티 지역에서 현지인과 한국선교사가 함께 생활하며 신앙훈련을 하는 ‘자랴공동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자랴’는 러시아어로 ‘서광’을 뜻한다. 이 선교사는 비자 문제 등으로 입국해 현재 경기도 성남 남서울은혜교회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고 있다.

이 선교사의 집은 비참할 정도로 가난했다. 직업 군인이던 아버지는 이 선교사가 갓난아기였을 때 뱀에 물려 왼쪽 다리를 못 쓰게 됐다. 아버지가 퇴역한 후 가족은 강원도를 떠나 서울로 올라왔지만 곧 철거민 이주정책에 떠밀려 성남으로 이사했다. 여동생 성미는 그곳에서 천막 살이 할 때 태어났다.

그 무렵 아버지는 점점 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술에 취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어머니를 때리며 울분을 해소했다. 결국 어머니는 “애들을 다 돌보지도 못하는데 해외 입양을 시키자”는 친척들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5살 난 성미가 조건에 맞았다.

“성미가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집을 떠나던 날은 지금도 생생해요.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 그냥 눈물만 흘렸지요.”

이 선교사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열 살 위의 남성과 결혼했다. 아버지는 그 전 해에 세상을 떠났고, 맏딸로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그런데 남편은 결혼 첫날부터 손찌검을 했고, 결혼은 10년 만에 실패로 끝났다.

1989년, 불쑥 “이성미를 아느냐”는 전화가 걸려왔다. 아무리 찾아도 만날 길이 없어 포기했던 동생의 이름이었다. 얼마 뒤 성미는 네덜란드로 입양됐던 16명의 입양아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다섯 살 꼬마는 미란다 쿠푸먼스라는 이름의 스무 살 성년으로 자라 있었다. 이 선교사는 공항 입국장을 나오는 무리들 틈에서 바로 동생을 알아보고 눈물을 터뜨렸다. 동생은 한 달간 가족과 함께 지낸 뒤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동생의 성장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 동생을 입양시킨 뒤 매년 동생 생일인 8월 30일이 되면 미역국을 끓이시고 동생이 무사하기를 기도했던 어머니였다. 그러나 그때는 심장 질환에 여러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은 뒤였다. 어머니는 성미씨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계속해서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는 그 5년 뒤 급하게 연락을 받고 귀국한 성미씨가 보는 앞에서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성미씨는 91년 중국 쿤밍에 단기 선교를 갔다가 미국인 선교사를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미얀마로 들어가 선교하고 있다. 성미씨는 어린 시절 낯선 환경과 인종 차별 속에서 방황하기도 했지만, 독실한 크리스천인 네덜란드 가족들의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자랄 수 있었다.

이 선교사는 97년 무렵 믿음의 길로 다시 돌아왔다. 20대 초중반 신학원에 다니며 전도사로 일하기도 했지만 현실에서의 연속된 좌절은 그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했다. 어느 날 한샘교회 안영목 목사가 찾아왔다. 실명한 어머니를 주일예배에 모셔다 드리며 알게 된 분이었다. 안 목사는 “새벽기도 중에 ‘이성현 자매를 너에게 보낸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왈칵 눈물이 터졌다. ‘하나님이 이 못난 자식을 버리시지 않았구나.’

이 선교사는 오직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 그 이듬해에는 안 목사 소개로 지금의 남편인 유정곤 선교사를 만났다. 부부는 3년 가까이 선교사 준비 과정을 거친 뒤 2000년 딸 슬비양과 함께 예수전도단의 파송을 받아 카자흐스탄으로 향했다.

이 선교사는 다음달 14일 한국에서 동생을 만난다. 이 선교사가 한국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성미씨가 미국인 남편, 세 자녀와 함께 찾아오기로 했다. 이 선교사 역시 이달 말 출국하려던 일정을 미뤘다. 98년 이 선교사가 결혼할 때 잠시 만난 이후 12년 만의 재회다. 두 사람 모두 선교사가 된 이후로는 첫 대면이다.

“우리는 떨어져 있었지만 결국 하나님 안에서 함께 걷고 있었던 거예요. 저는 상처나 아픔을 통해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눈물, 그 마음을 알게 됐습니다. 동생과 만나면 우리의 슬픔을 은혜로 바꾸신 하나님을 찬양할 겁니다.”

성남=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