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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디소식/MissionNaga

나가랜드 기독교 전래

by 위디국제선교회 2009. 4. 14.

 

<나가랜드 기독교 전래>

 

기독교가 유입되기 전에 나가인들은 인간사냥꾼으로, 정령숭배자들로 알려져 있었다. 그들은 다른 세계로부터 단절되어 있었다. 비록 나가랜드가 인도, 중국 그리고 미얀마에 의해 둘러싸여 있지만, 나가인들은 그들의 문화나 종교로부터 영향을 결코 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꾸준히 미국 침례교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사들을 보냈으며 그 땅에 발을 내딛은 첫 선교사는 E.W. 클라크  박사와 그의 아내 매리 메드였다. 그들은 1872년 12월 18일에 몰룽키몽 마을에 도착했다. 입국하자마자 클라크 박사는 15명의 젊은이들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이들을 주축으로 1872년 12월 22일에 첫 번째 나가 침례교회가 세워졌다.

 


클라크 박사는 몰룽키몽 마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했고 그들은 즉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가 다른 마을들로 이동했을 때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성령께서 나가랜드를 놀라운 방법으로 인도하시고 계셨다. 그래서 클라크 선교사는 미국 선교본부에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내 줄 것을 요청했다. 그 결과, 더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사역을 확장하기 위해 나가랜드로 파송되었다. 클라크 선교사는 새로운 선교사들과 모든 나가인들을 주님의 구속의 지식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첫 번째 선교센터를 암푸에 설립했다. 두 번째 선교센터는 코히마에, 로타 부족을 위한 번코숭 선교센터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미족 선교를 위해 아이주토 지역에 센터를 건립하였다. 교회들은 짧은 시간에 빠르게 성장했다.

 

클라크 선교사의 선교적 접근은 통합적이고 상황적이었다. 그는 개인적 거룩함, 구제, 자비량과 자력 번식을 강조했다. 그래서 그와 그의 팀은 나가랜드에서 성공적인 사역을 행하였다. 미국침례교 역사자료에 의하면, 나가랜드는 미국침례교회의 가장 성공한 선교지였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선교사들의 사역은 아오족, 안가미족, 로타족 그리고 수미족과 같은 네 개의 종족만을 포함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역사가 강력하게 임했을 때, 나가인들의 자결(自決)운동이 급속히 퍼져 나갔으며 선교사의 체류가 나가인들의 자결의식을 고무시켰다는 우려로 1956년 선교사들이 나가랜드에서 추방되었다. 정치적 긴장으로 인해 약한 영적 고아가 되었지만, 나가교회 지도자들이 대신 사명을 짊어지기로 하고 다른 부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러한 믿을 수 없는 부흥은 나가인 전체를 기독교인으로 만들어 버렸다.